[인포메이션] 공유의 도깨비를 틀어놓고 맥스웰의 도깨비를 알아가다
[인포메이션]은 카오스의 저자 제임스글릭이 쓴 책입니다.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라는 부제에 걸맞게 저자는 아프리카의 북소리로 시작해서 DNA를 거쳐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면 전부 17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각 장별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감수자인 김상욱 교수의 말처럼 저자인 제임스 글릭은 '정보'를 역사, 이론, 홍수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순서대로 바라보면서 풀어가고 있지만,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각각의 장 그 자체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 앞부분의 역사에 대한 부분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실들이 당연하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는 소소한 앎아감의 재미가 있었고, 중후반에 걸친 정보이론에 대한 부분은 조금 어려웠지만 천천히 읽어가는 맛이 있었고, 마지막에서 다룬 정보가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부분은 생각할꺼리를 줬습니다.
314쪽, 섀넌이 그린 비트저장용랑
인류가 정보 자체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었던건 섀넌이 정보에서 '의미'를 빼버린데서 시작했습니다. 정보에서 의미를 빼고 개념을 확실히 하면서 정보는 불확실성, 엔트로피, 카오스를 잇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단촐해진 정보는 생물학에도 등장하고 양자역학에도 등장하고 급기야 우주를 여태까지 10^120회만큼 연산을 실행했고 지금 10^90비트 정도의 정보를 담고있는 존재로 규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때 인류가 생산하고 소비한 정보는 소멸해버렸다. 이게 정상이고 기본이었다. 537쪽
풍요로움의 낭패. 정보는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또다시 떠오르게 한다. 557쪽
정보가 이처럼 모든 곳이 끼어드는 사이에 인류는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진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텍스트를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만들어준 인쇄기를 비롯해서 음성, 영상에 이어 더 많은 정보들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즉 각종 정보가 '안정성과 영구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들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생성되었습니다. 급기야 너무 많은 정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보여준 모든 지식이 존재하는 도서관은 어떤 지식도 없는곳과 마찬가지입니다. 도깨비 신부가 도깨비를 소환했을 때부터 서로에게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것처럼 '필터'와 '검색'이라는 도구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불러낼 수 있어야 의미가 사라진 정보에 다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됩니다.
필터링해주고 검색을 도와줄 맥스웰의 도깨비는 없다. ... 진짜를 고르는 데는 일이 필요하고 또 망각에는 더 많은 일이 필요하다. ... 이제 우리는 모두 바벨의 도서관의 이용자이면서 사서이기도 하다. 578쪽
필요한 정보를 고르고 의미를 부여하는건 촛불을 불어서 도깨비를 소환하는 것보다 훨씬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드라마에서조차 도깨비는 태어나지도 못할뻔한 도깨비 신부를 구해주는 '얽힘'의 과정을 통해서 도깨비 신부를 얻었고, 도깨비 신부는 억지로 지워진 기억을 스스로 되살려냈고 죽었을때도 '망각'을 선택하지 않음을 통해서 도깨비에게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제서야 자각한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끝난 드라마 다시보기'입니다. 결말을 아는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드라마 속 상황을 즐기기도 하고 다시보는 장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새벽에 드라마 도깨비를 틀어놓고 [인포메이션]을 읽으면서 '끝난 드라마 다시보기'만큼이나 '한 번 읽은 책 다시보기'도 제가 좋아하는 취미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재미없는 드라마를 다시볼 이유가 없는것처럼 재미없는 책도 다시 읽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읽을 [인포메이션]이 벌써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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