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오파기티카와 블랙리스트

Posted by 쪽빛아람
2017. 1. 18. 22:58 2017/Book


2016년을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구입한 책이 박상익 교수님이 다시 번역하신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입니다.


 '아레오파기티카'는 영국 청교도 혁명 시기를 살았던 밀턴이 출판 검열제를 반대하기 위해서 쓴 글이라고 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한번에 이름이 외워지지도 않았던 아레오파기티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15년 봄 청어람이 주최한 김교신 강연회에서 박상익 교수님의 밀턴 강연입니다. 그 이후로 영어로 읽어보겠다고 두어번 시도하다가 난해한 밀턴의 문장 덕분에 진도가 안나가던 차에 박상익 교수님이 재번역을 하셔서 책을 내신다기에 기다렸다가 바로 구입했습니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특검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건은 크게 이화여대 입학비리, 대기업을 통한 금액 수수 그리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입니다. 처음 정부에 의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 군사정부 시절이나 최근 정권에서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있었으리라는 짐작 때문인지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특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다루는걸 접하면서 블랙리스트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다시금 깨닳았습니다.


 해방 이후의 한국 지성사에서 자유주의는 사실상 존재한 적이 없다.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파시스트들이 자유주의의 수호자 노릇을 자임하는 희극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아레오피기티카 9쪽, 존 밀턴 지음, 박상익 옮김, 인간사랑


 군사정권이 끝나기 전에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입학해서 문민정부가 시작되는 해에 중학교를 들어간 제게 자유라는 너무도 당연하고 꼭 지켜져야할 가치가 상당히 왜곡되이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후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사회 각 계층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힘으로 억누르고 경제를 발전시키던 시절이 효율성은 더 높았다는 생각을 한 적도있었습니다. 아레오피기티카 머리말에서 박상익 교수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어느 것이 진짜 자유이고 어떤 것이 정말 지켜져야 하는건지 머리로는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선뜻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었던겁니다.


 당장 작년 10월 마지막 토요일에 청계광장에 나가면서 이런데 나가다가 찍히는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물론 설사 불이익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해도 할 말을 하지않고 살지 않을껍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했다는 자체로 이미 비극이고, 아마도 저는 평생 그런 걱정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할껍니다. 제가 자란 나라가 은연중에 그런 걱정을 하도록 만드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해맑기만 한 조카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그로인해서 자기가 당할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