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가뭄] 가사 노동 불평등 보고서
작년 중반 한 온라인 게임 제작진과 관련해서 시작된 논란이 오프라인까지 시끄럽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사안을 바라보는 의견이 평소에 돌아다니던 각종 게시판과 페이스북 타임라인 양쪽에서 그만큼 극명하게 대립한 적이 없었던터라 한동안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정도 제 생각도 정리했지만, 아직은 어떤 식으로든 사건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게 있다면 '페미니즘'은 막연히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고만 생각했고 딱히 알고싶은 의지도 없었지만 지금은 알아야만 하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책을 몇 권 읽으려 해봤지만 이전까지 전혀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아는것도 없었던 분야라 그런지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차에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을 만났습니다. 막연히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는 다른 책과 달리 '가사 노동'에 대해서 말하는 [아내 가뭄]은 십수년 전부터 혼자살고 있는 제가 늘 마주치는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정 밖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정치 평론가라는 애너벨 크랩은 가정 안에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풀타임 직장을 가지고 있는 배우자와 함께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애너벨 크랩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책에서 들려줍니다. 너무 쉽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지만 그런 이야기 사이사이에 각주를 통해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글 서두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언급하면서도 최대한 사건이나 인물을 지칭하는 단어를 쓰지않으려 노력한건 워낙 민감한터라 흔히 쓰는 단어 하나에도 의견일 갈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 가뭄]에서 이야기하는 아내가 곧 여자를 뜻하는게 아니라는건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서론에서 애너벨 크랩은 '전통적으로 아내란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건 가정 밖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에게 '아내는 끝내주게 좋은 직업적 자산'이라고 강조합니다.
서론 '아내 가뭄 주의보 발령'에서 결론 '우리에게 다시 혁명이 필요하다면?'까지 총 열 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통해서 애너벨 크랩은 '가사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은 '가사 노동'을 감당해주는 아내가 있기에 가정 밖에서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연히 제법 [아내 가뭄]은 '가사 노동'을 여러 관점에서 보여줍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사안들이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고해서 그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건 아니겠지만 책을 통해서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관점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책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도 제가 '페미니즘'을 조금은 안다고 할 자신은 없습니다. '평범한 남자가 행동을 바꾸려면 대개는 외부적 사건이 필요하다'는 애너벨 크랩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외부적 사건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잘못 발현되는 예를 작년에 너무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자들이 달라져야 할 차례'라는 애너벨 크랩의 결론에는 동의합니다. 책을 읽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지만 책을 통해서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고 구체적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아내 가뭄] 한 권 읽는다고 인류의 반인 여성을 혹은 페미니즘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배우자와 함께 가정을 좀 더 잘 꾸려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생겼습니다.
'2017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에게 온 책] <21차> 올재 클래식스 (0) | 2017.01.24 |
---|---|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좋은책 그리고 빈 자리가 있는 책 (1) | 2017.01.22 |
아레오파기티카와 블랙리스트 (0) | 2017.01.18 |
[그래, 별을 팔자]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가야하는가 (0) | 2017.01.08 |
[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 - 좋은 책이자 성공한 책 (0) | 201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