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 - 좋은 책이자 성공한 책
글쓰기와 관련된 첫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그림일기와 독후감입니다. 그림일기는 밀려서 쓰다보니 날씨가 문제였고, 독후감은 원고지 다섯 장이라는 분량이 문제였습니다.
첫 장은 책 제목 아래 위로 한 줄씩 비우고 학교·반·번호·이름으로 한 줄씩 쓰고나서 다시 한 줄을 띄면 제일 아래 두 줄만 남습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하면서 네 번째 장 중간 즈음까지 채우고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떻게든 다섯 번째 장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원고지 다섯 장이라는 분량을 만들어낸 셈이기 때문입니다. 남은 분량은 책의 주제로 여겨지는 얘기를 하거나, 감정이 이입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크게 무리없이 독후감 쓰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서평 쓰는 법]을 읽다보니 어린 시절 기억이 났습니다. 책 서두에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에 대해서 나와서이기도 하지만, 요약이 서평의 토대가 된다는 대목에서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 독후감 내용의 대부분을 책 내용 요약으로 쓰면서 잘못된 독후감을 쓰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체로 나쁘지 않은 글쓰기였구나 싶으면서 한결 편한 마음으로 [서평 쓰는 법]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서평 쓰는 법]을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읽은 이유는 이원석이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책 속에도 언급되만 작가는 몇몇 곳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독서모임 중 한 곳의 오프라인 모임에 두어번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참여자 중에는 이원석 작가보다 관련된 책을 더 많이 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는 주최자보다 읽은 책이 많았음에도 그 참여자의 독서는 읽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원석 작가의 독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거듭하여 책을 해석하면서 그 책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동시에 독자 자신도 새로워집니다.
이 해석 작업은 말과 글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서평은 글의 일종입니다. 서평은 다름 아닌 논리를 담아내며, 서평가가 읽은 책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과 평가를 문자화합니다.'
-[서평 쓰는 법] 37쪽, 독서가와 서평가가 선 자리 중
예전부터 일정 이상의 인풋이 의미를 지니고 계속되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아웃풋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모임을 하면서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독서의 완성'이라는 [서평 쓰는 법]의 부제를 보면서 다시금 깨닳았습니다. 독서가 허망함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반드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왕이면 일회성을 지닌 말에서 그치기보다 글로 표현하고 정제해야합니다. 물론 올바른 지성인이라면 정제된 글로 표현한 뒤에 삶을 바꾸는데까지 나아가야만 합니다.
[서평 쓰는 법]은 서평의 본질과 서평의 목적에 대한 '1부 서평이란 무엇인가?'와 서평의 전제, 서평의 요소, 서평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2부 서평을 어떻게 쓸 것인가?'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져있습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책의 제목은 '서평 쓰는 법'이지만 정작 서평을 쓰는것과 직접 관련된 부분은 2부 마지막의 '서평의 방법'밖에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서평에 대한 책이라는건 알겠는데 굳이 서평 '쓰는' 법이라고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책을 읽은 후에 서평을 쓰려고 줄친 부분들을 정리하다보니 서평이 무엇이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하는 1부에서부터 서평을 위해서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전제부터 서평의 필수 요소인 요약과 평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과 마지막으로 서평쓰기의 팁을 알려주는 2부까지 책 전체가 서평 '쓰는 법'과 직접 연괸되어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작가는 [서평 쓰는 법]이라는 책을 통해서 책을 제대로 읽고 서평을 쓰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이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닙니다. 서평 쓰기는 개인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 차원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서평 쓰기는 단순한 개인적 도락을 넘어서서 강력한 정치적 행위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좋은 책을 읽고, 멋진 서평을 쓰는 것은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교양 혁명의 첫 걸음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성원으로서, 국가를 이루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필수적인 선택입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세요. 우리의 서평이 차곡차곡 쌓이는 만큼 우리가 사는 사회도 건강해질 겁니다. 우리가 쓰는 오늘의 서평에 우리가 사는 사회의 내일이 달려 있습니다.'
- [서평 쓰는 법] 168쪽, 에필로그 '서평의 오늘과 내일' 중
책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119쪽이었습니다. '맥락 파악으로서의 지적 교양'에 대한 설명으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주인공 당테스에게 스승인 파리아 신부가 들려준 조언에 대해 나옵니다. 아직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나기만 합니다. 자꾸 늘어나기만 하는 목록을 보면서 끝이 없는 여정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만 합니다. 그런 제게 파리아 신부의 조언은 새로운 힌트가 되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서재에 오천 권 가까이 책을 가지고 있었지. 그것들을 읽고 또 읽는 동안에 정성 들여 가려낸 백오십 권의 책만 있으면, 그것이 비록 인간의 지식을 완전히 요약한 것이라곤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인간이 알아야 할 만한 것은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그래서 나는 삼 년 동안 그 백오십 권의 책만을 자꾸 되풀이해서 읽었네. 그래서 내가 체포됐을 당시엔 그 책들을 거의 다 외고 있었으니까.'
- [서평 쓰는 법] 119쪽에서 재인용
서평쓰기는 페이스북에서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하면서 글쓴이에게 기쁨을 주거나 피드백을 하거나 또다른 이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해당 글을 읽는다는 행위에 일종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습니다. 서평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인터넷에 올림을 통해서 작가에게 힘을 주고 출판사에 피드백을 하고 우리 사회의 또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서평을 쓰는 행위 자체가 독서에 마침표를 찍어서 일단락을 지을 수 있게해줍니다. 그야말로 서평쓰기가 독서의 완성이 됩니다.
좋은 책이란 책을 통해서 독서의 지평이 넓어지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책이란 독자가 책에 나오는 설명을 이해하거나 책이 주장하는 바에 설득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평 쓰는 법]은 좋은 책이면서 동시에 성공한 책입니다. 책을 읽고나서 읽어야할 목록에 여러 권의 책이 올라갔고, [서평 쓰는 법]의 서평부터 제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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