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미담입니까?
오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아버지에게 간 이식을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기사에도 나와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법적으로 만 16세가 지나지 않은 사람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만 16세가 된 지난 6월 이후에 장기이식을 시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검색해보면 여러 매체에서 기사가 나왔고 '감동'을 줬다고 하면서 미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장기기증
뇌사자가 장기를 기증하는 경우처럼 사후기증이 있고, 생존자기 자기 신체 일부를 떼어서 기증하는 생존 기증이 있습니다. 어느쪽이든 제 스스로 선뜻 장기를 내어주겠다고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하는게 좋은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인식을 처음으로 다르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사람은 대학원에서 '의료윤리학' 시간에 들어오신 교수님이셨습니다. 그 시간은 '의료윤리'라는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많은 사례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례들 중 첫 내용이 바로 장기기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미담 기사만으로는 알 수 없는 기증 이후 도너가 겪어야 할 어려움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선뜻 생각할 때는 건강했던 사람에게 해가 될 정도로 떼어내지 않을테니 도너에게 큰 문제가 없을꺼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식받는 사람은 그 때까지 건강하지 않은 장기만 있던 상황에서 건강한 장기가 생기기 때문에 면역반응이라는 이미 알고있던 문제만 컨트롤하면 되지만, 도너는 건강하던 사람에게서 있던 장기를 떼어낸 상황이라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우라나라에서 올라오는 기사를 보면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살아야 할 기간이 긴 도너에게 어느정도까지 영향이 있을지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2012년 1월 8일에 JTBC에서 방영한 진실 추적자 탐사코드 [6회] 2부에서 장기기증 이후의 도너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 2.세계1위 장기기증, 그 숨겨진 진실 - 동영상 19분 10초부터)
선진국에 비해서 장기적인 환자관리가 잘 되지않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증 이후의 후유증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우리나라에서 가족 혹은 친족 사이에 이루어지는 장기기증사례 중 도너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당장 위에 제가 링크해놓은 기사만 봐도 아버지는 원하지 않았지만 지난 6월달에 만 16세가 된 아들이 원해서 장기이식 수술을 진행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만 16세를 막 넘긴 아이가 누군가랑 결혼하겠다고 나서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본인이 원하는 일이니 허락해주는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적어도 장기기증 기사를 미담으로 받아들일 사람들보다는 적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른을 공경해야한다는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크게 인정받는 사회입니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나 서로를 위한 희생이 지나치게 미화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1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장기이식이 가능한 사람이 이식을 거부하는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과학동아 2016년 7월호 '장기기증자의 눈물: 생존 장기기증자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도너가 원하지 않을 경우에 의료진이 의학적으로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도너가 이식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다고 합니다.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보험 영업이나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지만 정 때문에 혹은 체면 때문에 승낙하게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기기증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요?
병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스스로의 장기를 떼어내서 기증하는 행위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그런 내용을 미담으로 소개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뉴스 소재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려야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같은 상황에서 장기이식의 도너가 되는 선택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어야만 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실제로 유대관계가 밀접하다거나 희생이 더 많은 사회인지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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