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지금은 새벽 세시 반
고등학교 1학년 때 앙팅(앙케이트팅)이라는걸 했습니다.
빈 노트를 하나 준비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알고싶은 질문을 하거나 무언가 요청을 적습니다. 그 노트를 다른학교(당연히 여자학교)에 보내면 제 앙팅 상대가 읽고 답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질문 노트를 보냈고 저도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승호씨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을 읽다보니 문득 앙팅이 생각났습니다. 빈 노트에 상대방이 답해줬으면 하는 질문을 적는게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던지는 질문을 준비하는것과 닮았습니다. 제가 페이지마다 적은 질문에 답을 적어주는 상대방은 제 인터뷰에 응한 인터뷰이가 되는 셈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은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빌이서 표현하자면 '독보적이라는 수식어조차 불필요한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인 저자가 다른 이들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닌 본인이 가장 잘 하는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책은 '인터뷰란 무엇인가' , '왜 인터뷰를 하는가' , '인터뷰어의 역할과 태도' , '인터뷰는 섭외가 반이다' , '인터뷰어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 '잘 듣고 잘 말하라' , '인터뷰는 결국 기록이다' , '인터뷰어가 갖추어야 할 자질' , '고마운 사람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 라는 제목의 총 아홉 개의 부분들마다 적게는 다섯 꼭지에서 많게는 열 다섯 꼭지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각각의 부분이 인터뷰와 관련된 여러 면들을 얘기하고 있지만,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인터뷰어인 저자가 인터뷰이를 어떻게 보여주고싶어하는지를 말해준 아래 대목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난 이 사람을 이렇게 봐. 이 사람의 이런 면을 사랑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다 읽고 나면 '이 사람이 이 사람을 되게 사랑하는 것 같구나.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네'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3쪽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앙팅이 떠오른 이유는 책을 함참 읽다가 시계를 봤을 때가 새벽 세 시 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에 제가 던진 질문 중에 '지금 시각이 새벽 세 시 반이고, 카세트데크에서 화이트의 노래 지금은 세벽 세 시 반이 흐러나오고 있는데 답변하고 있는 시각은 몇 시인가요'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제 앙팅은 성공한 인터뷰였을까요? 절반은 성공이었고, 절반은 실패였습니다.
별로 하고싶지 않았던 앙팅에 끼게된건 앙팅의 상대방이 S여고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학원의 S여고 다니는 친구가 반에서 몇 번인지 알고있었기에, 그 친구 번호에 해당하는 질문으로 같은반에 그 번호인 친구에게도 앙팅에 답장을 적어달라고 하라는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정말 그 친구가 같은반이었습니다.
앙팅의 상대방이 학원 친구랑 같은 반이었으니 제 의도대로 되기는 했지만, 정작 제 인터뷰이였던 앙팅의 상대방에게는 초점을 맞추지 못한겁니다. 한마디로 제가 앙팅한 이유로는 성공이었지만, 인터뷰로는 실패였던 셈입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인터뷰를 잘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고합니다. 뒤이어서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동안 인터뷰가 어떤것인지를 알아감과 함께, 중간중간 저자가 들려주는 인터뷰 이야기에서 인터뷰어인 저자가 인터뷰이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혹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터뷰에 응하는 인터뷰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저자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환자를 위해서 얼마나 준비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지면으로 옮기는 일을 오래한 저자가 쓴 책이라서인지 책장이 잘 넘어갑니다. 또한 전업 인터뷰어가 저자인 책 답게 여태까지 해왔던 인터뷰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인용문을 읽는 재미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앞으로 인터뷰어가 되고싶은 사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읽으면 분명 저처럼 도움을 받을 수 있을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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