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3·1절을 시인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Posted by 쪽빛아람
2016. 3. 1. 23:51 2016/Life


 개인적으로 해마다 봄을 맞이하는 3·1절은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해야하는 일이 있는것도 아닌터라 해마다 2월 말이면 3·1절을 어떻게 지내나 고민을 합니다.


 올 해는 주말과 공휴일 사이에 끼인 4년만에 돌아온 2월 29일에 진료를 하고 밤늦게 극장을 찾았습니다. 2월 중순, 조금 더 정확히는 윤동주 시인의 서거일인 2월 16일 바로 다음날 개봉한 영화 '동주'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꼭 보고싶던 영화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인의 일생을 그린 영화 '동주'가 너무 무거우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습니다. 함께 영화본 친구가 무슨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한숨을 많이 쉬느냐고 놀리긴 했지만, 짓눌릴만큼 무겁지 않았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문익환 목사는 잠시 등장하고 말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1917년생 동갑내기 사촌이던 송몽규와 윤동주의 삶이 잘 녹아들어간 영화였습니다. 어제밤 이 시각 즈음에 영화가 시작했으니 영화를 본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은 좀 더 가라앉은 후에야 쓸 말이 있을듯합니다.


 "윤동주를 만들어진 우상쯤으로 함부로 봤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고 나서 어설피 말했던 내 시늉이 남세스러워졌다. 지리멸렬한 시대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던 큰 고요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질긴 사랑이 지금 필요하기 때문이다." -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 김응교, 문학동네. 책날개에서


 영화보는 내내 제가 자꾸만 한숨을 쉬었던 이유를 알 듯도 모를 듯도 합니다. 후쿠시마 감옥에서 취조받는 장면에서 시인이 서명을 거절하면서 던진 한 마디가 계속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 시대에 태어나 시인이 되려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서명할 수가 없습니다.'[각주:1]




  1. 전적으로 제 기억에 의존했기 때문에 정확한 대사는 아닙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