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프린키피아] 눈금없는 자와 컴퍼스만으로 만들어가는 세상

Posted by 쪽빛아람
2016. 1. 28. 23:18 2016/Book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수학시간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요즘처럼 춥지도, 그렇다고 덥지도 않은 날이었고, 너무 이른 아침도 그렇다고 나른한 오후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교실 딱 중간 즈음에 앉아있었습니다. 사실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그 날은 자지않고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한 녀석에게 던진 선생님의 질문이 만족스러운 대답을 못찾고 같은 줄에 앉은 친구들에게로 차례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키가 약간 작으시고 피부가 검은 편이시라 외모와 관련한 별명이 있으셨던 선생님이 그 날 아이들에게 물어보신 질문은 '원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막연히 동그란 도형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평면 상에서 한 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진 점들의 집합'이라는 정확한 대답을 해서 질문을 던지신 선생님을 흡족하게 하는 그런 재수없는 녀석도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도형과 좌표를 연결해서 공부하는 '해석기하학'에 해당하는 부분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행히 공간지각력은 남들보다 쳐지지 않은 편이었기에 수학 중에서 도형도 잘 하는 편이었고, 데카르트가 발명했다는 좌표계에대한 거부감도 없는 편이었던터라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는데 남들보다 유리했었습니다.


 좌표계와 숫자를 통해서 도형에 접근해 버릇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오히려 숫자와 좌표가 빠진 도형이 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도형 문제보다 중학교 도형 문제가 훨씬 어렵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도형을 있는 그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좌표와 숫자에 너무 의지해서 바라봤기 때문이라는걸 이 책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책은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이신 안상현 님이 쓰신 책입니다. 책의 프롤로그만 읽어봐도 어떤 책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만유인력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소개하려고 썼다. 그래서 이 책은 기하학 천지이다." - 7쪽


 이렇게 시작한 책이 프롤로그를 지나서 '제1장 기하학' 부분으로 가면 뉴턴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유클리드가 쓴 " '기하원론'과 공리체계"의 역사로 시작하는 바람에 손에 들고 있는 책이 기하학 책인지 사학 책인지 그도 아니면 논리학 책인지 헷갈리게 합니다. 하지만, 공리체계에 대해서 프롤로그에서 그리고 1장에서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을 들여다보면 뉴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이전에 저자가 가장 하고싶은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공리체계에서는 객관적인 공리와 명제를 사고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실을 공유하면서 다투지 않고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기초인 대화와 토론이 생산성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을 배우는 까닭은 바로 민주주의의 토대인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익히기 위해서가 아닐까? " - 10쪽


"수학을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공리(약속)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약속과 관련된 법치주의나 준법정신처럼 생각해도 좋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공리를 공유하면서 명제의 참과 거짓을 따지며 토론할 수 있다면 쓸데없는 다툼을 피할 수 있고 해결책을 찾아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요? " - 31쪽



 거창하게 써놨지만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닙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책도 실제로 펼쳐보면 그림이 많고, 수식이 있지만 실제로 숫자를 계산해야하거나 하는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중학생도 혼자서 천천히 읽어나갈 수 있을법한데, 극한의 개념이 나오는 부분이 몇 곳이 있어서 아무래도 전체를 혼자서 읽어내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다루는 주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역사 이야기나 원뿔곡선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학창시절 수식만 가득차있을것만 같았던 수학도 결국 다 이야기에서 시작했다는걸 알려줬던 많은 책들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대놓고 '기하학 천지'라고 표명한 만큼 책 속에도 그림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기보다 직접 작도를 하면서 읽을 때 더 재미있었습니다. 에전같으면 직선을 그을 수 있는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를 가지고 종이 위에 그려야만 했겠지만, 지금은 인터넷만 된다면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언제든지 작도를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아래 두 사이트를 소개해주길래 즐겨찾기에 넣어두고 책 속에 나오는 명제나 문제들을 하나씩 그려보고 있습니다.


http://www.geogebra.org

http://graph.tk


 솔직히 아직은 책 속에 나오는 모든 문제나 명제를 다 작도해보진 못했습니다. 처음 책을 펼친 날부터 손 닿는데 책을 두고 생각나면 하나씩 그려보고 있습니다. 저처럼 혼자 그려보는것도 좋겠지만, 머리를 맞댈 사람이 있다면 함께 그려보는것도 참 재미있을꺼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던져주지만 마시고, 함께 선을 긋고 원을 그려보면 어떨까요?


 아, 금요일 저녁 명동 북파크에서 '인터파크 과학 살롱 강연회'를 하는데 지난주와 이번주가 이 책의 내용을 가지고 저자가 직접 강연하십니다. 부제를 <중학교 수학으로 풀어보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라고 달았던데 중학생들이 듣기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저자와 얘기해보는걸 좋아하는터라 두 번중에 한 번 정도는 직접 가서 들어보고 싶었는데, 금요일은 야간진료가 있는 날이라 가 볼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