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 흘러가는 시간에 받침대를 세우는 영화

Posted by 쪽빛아람
2016. 1. 1. 23:26 2016/Life



새해 첫 날 잠시 본가에 들렀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입니다. 어제밤 갑자기 내려오면서는 며칠이나 있을지 몰라서 책을 몇 권 챙겼습니다. 책장 앞에서서 고민하던 제 눈에 띈 책이 '시간의 마법'이라는 책이었고 그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영화가 바로 '사랑의 블랙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지만, 원 제목은 'Groundhog Day'입니다. 나무위키를 보면 Groundhog Day는 양력 2월2일로 우리말로 성촉절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칩 정도를 생각하면 됩니다. (엄밀하게는 성촉절과 Groundhog Day은 날짜만 겹치는 날이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을 겨울이 끝나가는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영화 속의 미 동부에서 마못이 깨어나는 날에 겨울이 얼마나 더 길것인지를 알아보면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말 제목을 보면 가벼운 로멘스물 같고, 영어 제목으로는 영화 내용이 짐작도 안갑니다. 굳이 따지자면 영화의 흐름에 로멘스가 분명히 있고, '블랙홀'이라는 의미가 사랑과 시간 양쪽에 중의적으로 적용되기에 촌스럽지만 우리말 제목이 더 영화를 잘 드러냅니다.

영화는 성촉절 행사 취재를 위해서 펑츄토니라는 마을을 찾은 주인공이 촬영 후에 눈보라로 발이 묶여서 할 수 없이 하루 묶고 다음날 아침에 깨어났는데, 다음날이 아닌 성촉절에 다시 깨어난다는 이야기 입니다. 블랙홀 같은 하루의 반복을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이 사랑으로 극복한다는 어쩌면 뻔한 스토리 입니다.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크게 흥행에 성공한 것도 아니고, 평론가들에게도 주먹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뒷날 영화가 보여주는 철학적인 의미들로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달력상의 날짜는 바뀌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과 닮아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똑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듯하지만, 영화 속에서와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시간이 흘러갑니다. 오늘 오후에 어머니와 나란히 마트에 다녀오면서 생각해보니 제 기억속 가장 젊은 어머니의 모습보다 이미 제 모습이 다 나이들어보이더군요.(물론 저는 원래 성숙해보였습니다) 이 년 전 이맘때 태어나서 고개도 제대로 못가누던 조카는 이제 혼자 계단을 내려오겠다고 떼쓰는 것마저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올 한 해는 그저 시간을 보내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을 받침대로 굳건히 버텨야겠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시간과 사랑의 블랙홀을 탈출한 것처럼 저도 넘어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