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시인의 문장

Posted by 쪽빛아람
2015. 9. 3. 23:53 2015/Life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러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전문 '학풍', 1948.10, 갈래나무, (김응교, 백석의 시창작법, 에서 재인용)




 오늘 백석을 세 번째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응교 선생님은 백석 시를 통해서 스스로의 어려움을 보여주면서 누구에게나 위로가 된다는 점, 어려운 이들의 곁에 서있으면서 '우리-피로'[각주:1]를 통해 오히려 힘을 준다는 점,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결국 '중심'에 대한 새로운 관점 즉 높고 빛나는 어딘가가 아닌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주변인들이 세상의 줌심이라는 생각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백석이 이러한 사상적인 부분 때문에 많은 시인들에게 사랑받는것은 아닐것입니다.


 백석을 알아가면서 느낀 문장적인 특징은 사투리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다는 점과 그럼에도 찬찬히 읽어보면 내용이 어려운 시는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명사는 사투리를 사용하고 동사는 일상언어를 사용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설명해주신 바들은 열거법을 잘 사용했다던지, 이미지화를 잘 했다는 것 등이 있었습니다.


 백석의 시에서 많은 의성어, 의태어를 읽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보면 산문처럼 늘여쓴 시 속의 한 문장이 너무 길기도 합니다. 게다가 문장 속에 '것인데' , '것이었다'같은 어미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의성어, 의태어의 사용이나 문장을 길게 쓰거나 '것'의 남발은 좋은 문장을 쓰기위해선 피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대표적인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백석의 시를 많은 전문가들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의 하나'라고 격찬하기도 하고[각주:2], 젊은 시절 신경림 시인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고 책을 그 자리에서 떨어뜨릴만큼 감동받았다고 합니다.[각주:3]


 말 그대로 시인의 시를 처음 읽을 때는 갸우뚱 하다가 다시 읽을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다시 읽을 때는 갸우뚱 합니다. 백석은 의성어, 의태어를 빼고도 비슷한 감동을 줄 수 있었을 테지요. 문장을 길게 늘여쓰지 않고 짧게 끊어서 시를 쓸 수도 있었을테고, '것' 없이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지 못해서 사용한 것은 아닐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백석이 쓴 것과 제가 쓴 것의 차이를 알 듯도 합니다.


 백석의 시를 읽고 책을 떨어뜨릴만큼 감동하지 못하는 것은 제가 신경림 시인만큼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백석이라는 시인을 알게되어서 기뻤고, 시인의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은만큼 시인의 문장을 보면서 고민하게 됩니다.







  1. 힘든 이들에게 다가서서 당장 힘든 것 같지만 오히려 힘을 얻는 경우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설,추석 명절이면 힘들지만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찾아가서 위로를 얻게되는 상황을 '우리-피로'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본문으로]
  2.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 민음사, 1973, 219면. 김응교, [갈래나무, 백석의 시창작법] 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 신경림, '다시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기까지' , 계간 '창작과 비평', 1994, 겨울호, 201면 김응교, [갈래나무, 백석의 시창작법] 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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