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나무, 별 이름
1999년에 MBC에서 방영한 '장미와 콩나물'이라는 제목의 주말드라마가 있습니다. 구파발에 살고있는 네 아들이 있는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였는데, 둘째 며느리 손미나 역을 한 최진실 배우손미나 역와 시어머니 이필녀 역의 김혜자 배우가 콩나물로 대변되는 아줌마로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감독인 둘째 아들 최영대 역으로 출연한 손창민 배우의 살짝 허세가 있으면서도 집안을 책임지려던 자세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정작 제가 이 드라마를 기억하는건 특별히 하는거 없이 집안일을 도와서 농사를 하는 셋째아들 최규대 역으로 출연한 차승원 배우와 의사 집안의 외동딸이자 법조인 1 조은수 역인 김규리 배우가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모자람이 없이 자란 은수는 한 동네에서 알고지냈던 규대와 마음이 통했습니다. 의사인 부모님과 법조인인 본인의 직업 덕분에 주변에 의사나 법조인이 많았지만, 특별히 뛰어나보이는게 없는 규대를 선택한 이유는 규대가 꽃과 나무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서 망설이던 규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결혼까지 한 은수의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십수년 전 드라마이고 드라마 전체를 다 본것도 아니기에 제 기억에 조금씩 어긋남은 있겠지만, 규대가 꽃과 나무와 별 이름을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는것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어릴 때 제가 그런 어른이 되고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따라서 산에 자주 다녔습니다. 아버지는 겨우 소나무만 구분하는 제게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풀이 다 똑같아 보이는 들에서 먹을 수 있는 나물을 뽑아내셨습니다. 수많은 꽃들의 이름을 알려주셨던 아버지 때문인지 다음에 어른이 되면 꽃과 나무와 별을 단순히 꽃과 나무와 별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하나 가진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날이 따뜻해진 후로 겨우내 불어난 몸을 다잡아보려고 일부러 걸어다니곤 하면서 주변에 꽃이 보이면 이름은 뭔지 특징은 뭔지 찾아보곤 합니다. 사진 속의 꽃은 제가 차를 주차하는 벽 너머에 자라는 꽃나무 입니다. 늦봄이면 꽃이 떨어지면서 제 차에 많은 흔적을 남기곤 하는 녀석인데 몇 년을 보면서 이 꽃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엊그제 토요일에 꽃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는데 아직 이름을 찾지 못했습니다. 서점에 가서 꽃과 나무 도감을 하나씩 구입해야하려나봅니다.
P.S.
확실치는 않지만 사진 속은 꽃은 라일락인듯합니다. 라일락이 흰 꽃보다는 보라색 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자꾸 흰 꽃만 검색하는 바람에 계속 못찾은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꽃의 향기도 기억속의 라일락과 비슷했습니다.
- 검사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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