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심하지 않는가

Posted by 쪽빛아람
2016. 1. 29. 18:40 2016/Life


SBS 카드뉴스 첫 번째 사진입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349739&oaid=N1003351602&plink=TOP&cooper=SBSNEWSEND


 최근 일본에서 한 고등학생이 통학을 위해서 문을 열던 열차역이 학생의 졸업에 맞춰서 폐쇄한다 이야기가 SNS에서 떠돌았습니다.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서 공공을 위한 약속을 얘기하면서 이 이야기를 인용했고, SBS에서는 카드뉴스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알려진 것과 다른 부분 몇 가지 있습니다.


 저도 BesTan 님 블로그에서 '단 한 명의 여고생을 위한 일본 기차역: 감동이 반감되는 오류'라는 글을 읽고서야 완전한 거짓은 아니지만[각주:1], 미묘한 부분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학생이 이용하는 역은 뉴스에서 학생이 혼자 이용한다고 알려진 역이 아닌 같은 노선의 다른 역이었습니다. 잘못 읽으면 기차도 꼭 혼자서만 이용하는것처럼 이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다니는 엔가로 고등학교의 학생 상당수를 비롯해서 수십명의 승객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치 한 사람의 학생을 위해서 운행하다가 졸업에 맞춰서 역을 폐쇄하는것 같지만 철도회사인 JR 홋카이도는 이용객이 적어서 적자였던 역 8개를 올 해 3월에 폐쇄하기로 했고, 그 역 중에 학생이 통학을 위해서 이용하던 역이 포함되어있을 뿐입니다.


 밝혀진 사실들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이고, 뉴스에서 말하고 있는 '공공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를 던져줍니다. 오히려 사실을 세세하게 확인하지않고 뉴스가 만들어진 바람에, 오류가 알려지면서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졌다면 모두가 충분히 감동했을 이야기에 거짓이라는 오점이 끼어들어버렸습니다. 큰 틀도 중요하지만, 디테일 하나하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일도 많은 법입니다.

2015/07/07 - [2015/Life] - 신은 디테일에 있다


 BesTan 님 블로그 글만 읽어보면, 애초에 이야기의 시발점이 된 아사히 신문의 칼럼만 확인했어도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서 뉴스가 만들어졌을껍니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사라면 적어도 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뉴스를 만들기 전에 일본어로 된 정보를 통해서 사실관계 확인을 했어야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점은 SBS나 JTBC 뉴스를 통해서 해당 뉴스를 알고있던 사람들이 사실관계가 조금 다르다는걸 알고난 이후에 보인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뉴스의 오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NBAMANIA라는 사이트의 게시판 글을 통해서였습니다. 댓글을 보면 신뢰했던 언론에 대한 실망감을 표한 분도 계시고, 다른 곳에서 감동적인 내용에 굳이 세세한 부분을 따져야 하느냐는 반응을 받으셨다는 분도 계십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는 아닌터라 댓글이 많지는 않지만, 댓글을 단 사람 숫자를 고려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정보를 의심하지않고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 가을 즈음에 서울에서 내노라하는 유명한 교회에 방문했다가 담임목사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 중간에 '왜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공식은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제대로 믿지 않는가'라고 말하시는걸 듣고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저런 내용의 설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현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위 사진은 '유클리드의 기하원론'입니다. 유클리드의 기하원론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정의(Definition)와 공준(Porstulate) 그리고 공리(Common Notion)를 먼저 제시한 후에 그로부터 하나하나의 명제들을 해결해나갑니다. 위 사진 속에 파랗게 줄쳐진 부분속에 있는 주어진 한 직선에서 정삼각형을 그리라는 명제를 해결하면서 그냥 이렇게 하면 그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래 설명을 보면 필요한 곳에서 정의(Def. 1,15), 공준(Post.3, 1)이나 공리(C.N.1)를 적절히 근거로 들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클리드는 모두가 받아들일법한 내용들로만 정의, 공준 그리고 공리를 구성했지만 그 마저도 사실인지를 의심하고 증명하려했던 후세의 사람들 덕분에 유클리드의 전제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전되었습니다.[각주:2]


 비록 유클리드가 처음에 제시한 기준들은 훗날 뒤집힌 부분이 있지만, 명확한 어떤 내용을 근거로 시작해서 하나씩 생각을 확장해나가는 공리체계는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기본적인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 때 중요한 부분은 근거가 되는 내용이 정확한지의 여부와 그 근거가 올바른 방식으로 확장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렇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근거가 명확한지 그리고 논리이 없는지를 꼭 살펴야만 합니다.


 과거에 종이지면을 통해서만 기사나 글이 유통되던 시절에는 우리가 보는 뉴스의 신뢰도만이 근거가 명확한지 알 수 있는 기반이었습니다.[각주:3] 지금은 누구나 검색을 할 수 있는 구글신이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뉴스의 근거가 명확한지, 세세한 사실관계에 잘못은 없는지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애초에 거론했던 한 학생을 위해서 문을 열었다는 기차역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이 근거가 명확한지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많은 정보들이 난무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지금 읽고 있는 기사 혹은 글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기에 그 근거가 명확한지 그리고 주장이 합당한지 의심하는 자세를 한 켠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링크 모음

BesTan 님 블로그 '단 한 명의 여고생을 위한 일본 기차역: 감동이 반감되는 오류'

NBAMANIA라는 사이트의 자유게시판 글

JTBC 2016.1.6. [앵커브리핑] 공공을 위한 약속...'기차가 서는 간이역'

SBS 2016.01.10. [카드뉴스] 오직 한 명을 위한 기차역




  1. 아래에서 다시 밝히지만, 처음에 글을 알게된 것은 NBAMANIA의 게시판에서였습니다. 게시판에 BesTan 님의 블로그 글 내용이 올라왔습니다. [본문으로]
  2. 솔직히 전공자가 아니라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본문으로]
  3. 굳이 찾아보자면 여러가지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컸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