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의 딜레마] 어떻게 읽을 것인가
파주, 출판도시, 지혜의 숲
며칠 째 생각의 시대(살림, 김용규 )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호메로스 이후 그리스 시대에 생겨난 생각을 위한 다섯 가지 도구에 대한 책입니다. 그 도구 중 세 번째가 로고스(logos, 문장)입니다. 로고스(logos, 문장)라고 표현했지만 오늘날 생각하는 언어·산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이전에 문자를 새긴 점토판은 기록의 의미는 있었지만 그 내용이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용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전해받은 파피루스에 문장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단지 기록이 아닌 다른이에게 전달하는 용도로 언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그 내용들이 책으로 펼쳐질 수 있었던 시대였기에 로고스(logos, 문장)가 생각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기록하는 입장에서야 그렇다치고, 읽는이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라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독서법에 대한 책인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멘토, 찰스 반 도렌·애들러 지음, 독고 앤 옮김)에서 어떤 책인지에 따라 읽는 법을 달리해야한다고 배웠습니다. 책이라는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나가야 한다는 편견을 처음 깨 준 책도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이었습니다. 무턱대고 책의 첫 페이지부터 읽어나가지 말고 제목, 목차, 훑어보기 등을 통해서 사전준비를 한 후에 필요한 만큼 읽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 과정에서 읽지 말아야 할 부분을 선별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여러 번 읽을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인문학자 에밀 파게는 독서법에 대한 책 단단한 독서(L'Art De Lire, 유유, 에밀 파게 지음, 최성웅 옮김) 마지막 장에서 되풀이해서 읽어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에밀 파게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느리게 읽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단단한 독서 첫머리부터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느정도로 강조하는가하면 천천히 읽는게 불가능한 책이라면 읽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독서법에 대한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천천히의 수준이 보통 사람에게 천천히일지 의문이긴 합니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샨티,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에서 저자는 천천히 읽으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그 천천히 읽는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표현한 대목을 보면 일상생활을 하는 일반인이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는 속도를 말합니다. 야마무라 오사무가 말하는 '천천히'라는 것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읽어낸다는 수준 그러니까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미디어,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에서 말한 15분에 한 권씩 읽는다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인듯합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조금 다른 이유로 책을 빨리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천천히 읽는다고 이해가 더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표시하고 넘어가서 전체를 마친 후 다시 돌아가서 읽으라고 조언합니다. 1
결국 책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는게 그치지 않고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해하는걸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든 잘 사용하면 됩니다.
책읽기에 대한 많은 책들이 있고, 각각에서 말해주는 방법이 다양하고 서로 상충하는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읽은 독서법에 대한 책 중에 책을 깨끗하게 읽으라고 조언한 책은 없었습니다. 저도 지극기 공감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불가능한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을 때입니다. 에전에
교회 청년부에서 청년들에게 책읽기를 권하기 위해서 문고를 마련해서 빌려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 때 친했던 누군가가 빌린 책을 읽으면서 연필로 연하게 밑줄을 치는걸 보고 불같이 화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는 책 읽을 때 밑줄을 치지 않으면 읽지 못해서 최대한 살짝 표시하고 반납하기 전에 지운다고 하더군요. 제가 문고 담당자였기에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했는데, 다른 책을 읽을 때 어땠는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2 가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남은 흔적들을 보면 옅게 표시했다가 지우고 반납하는건 차라리 양반이다 싶은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제가 구입한 책은 밑줄도 치고 여러가지 표시도 해가면서 읽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당연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방금까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다가 도저히 읽는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반납을 하고 책을 한 권 구입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지 책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걸 넘어서서 책에 기록된 내용 중에 나중에 참고해야 할 부분이 워낙 많은 책이라서 더 구입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책을 읽을 목적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구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책을 읽는것도 쉬운일은 아닌데, 아무래도 제약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읽기가 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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