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정조의 고민을 엿보다

Posted by 쪽빛아람
2017. 6. 9. 15:16 2017/Book


[정조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시민들이 6개월여를 촛불을 든 끝에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시민들의 손으로 뽑힌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새로운 나라의 틀을 잡아가는 중입니다. 이런 시점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개혁군주로 꼽히는 정조가 생각한 국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정조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를 읽었습니다.


 1752년 장조(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난 정조는 11세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습니다. 1775년부터 1776년까지 할아버지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 하다가 1776년 영조가 승하한 후 즉위하여 1800년까지 조선의 왕이었습니다. 무려 30년동안 세자였던 할아버지의 이복형 경종보다는 짧은 기간동안 세자로 지냈지만, 정조가 세자로 지낸 시기도 경종만큼이나 어렵고 위험한 정치적 상황이었습니다. 세자로 어려운 기간을 보내고 왕이되었고 후대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개혁군주로 꼽히게 된 점을 보면, 어떤 나라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정조의 고민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조책문'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책문'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한자어 뜻만 보면 '정책에 대한 질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 앞날개에는 '정조가 신하와 유생들에게 국가의 정책과 나아갈 방향에 관한 연구와 대책을 주문한 시대의 기록'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머릿말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학자와 관리, 예비관리 등 여러 신하들을 상대로 국가의 정책에 관한 질문을 하며 대책을 요청하는 공론의 장'이라 나와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정도책문]은 정조가 각종 과거시험에 낸 질문의 모음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질문이 어떻게 책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머릿말에 나와있듯이 '정조가 낸 책문에 이미 상당한 대안과 대책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책문 자체가 해당 분야에 대한 각종 경서와 사서의 내용을 담고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상의 대안을 요구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질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정조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조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정조의 글을 모은 '홍재전서'에 있는 책문 중 일부를 옮긴이인 신창호 선생님께서 발췌하고 재구성해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정치를 향한 소망

지도자의 열정과 그에 걸맞은 인재등용

문예부흥으로 빛나는 문명국가 건설

정치지침서를 통한 리더십 함양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노력


 각각 15개 혹은 16개의 책문을 담고있어서 총 78개의 책문이 [정조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에 실려있습니다.


 옮긴이가 적절히 재구성한대로 책이 짜여져있기 때문에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는 책입니다. 전체 내용이 궁금했고 빠트리지 않고 읽고싶은 마음에 앞에서부터 읽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면 목차를 확인하셔서 관심가는 책문을 하나씩 찾아 읽어도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정조가 던진 질문과 그에따른 설명만 읽는것으로 그치지 않고 저 자신을 질문을 받아든 그 시대 유생이라 생각해보거나 혹은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질문을 바라보면서 고민하다보니 진도는 더디나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 국가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려면 하루의 해처럼 길고 느긋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혼란은 달콤한 음악이 흐르는 것처럼 다급하고 빠르게 다가온다. 국가의 정치적 혼란은 '기수'의 세력이 다할 즈음에 '인사' 문제에서 초래한 것인가? 아니면 '인사' 문제가 이미 잘못되어 '기수'의 질서정연함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19쪽,'정치적 안정과 혼란은 어디에서 오는가?' 중


 단지 저것에는 좀 넉넉하고 이것에는 좀 모자라는 것이 있으므로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재능을 헤어려 적절한 직책을 맡기고, 임무를 전담하게 하여 책임감을 부여하며, 서자 출신의 인재와 중심부에 들어오지 못한 인재들, 지방의 초야에 묻혀 있지만 재능 있는 사람을 모두 함께 인재양성의 마당에 참여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펼치려고 한다. -92,94쪽,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라' 중


 옛날과 지금은 시대가 같지 않다. 지금을 옛날의 그 시대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 그것은 인간의 문화가 진보하는 차원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다.-178쪽,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라' 중


 저서로 자신의 언어를 남기는 일은 헛된 말에 의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말을 자신의 행동에 담아 공덕을 세워 길이 남게 하는 것이 좋다. - 242쪽, '자신의 목소리를 실천할 수 있도록 글을 써라' 중


 하나하나의 책문이 각각 독립적인 내용이라 전체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몇 곳만 발췌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든 생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거 조선시대를 살았던 정조가 생각한 국가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혹은 어떤 범위였을까 하는 점입니다. 제게 국가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정의하기 애매한 존재와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 시민들의 집합 중 어딘가입니다. 국가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답하기 애매하겠지만,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중요하다고 대답할터입니다. 그렇다면, 정조에게도 국가가 조선과 그 땅을 살아가는 백성을 다 아우르는 어딘가 였을까요? 신분사회였던 조선의 왕에게 백성은 어느 범위까지였을것이며, 모두가 동일하게 중하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둘은 정조가 나라를 고민한건 국왕이니까 의미가 있었지만, 2017년을 살고있는 제가 고민하는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책문'이라는 글이 정조가 고민하고 신하들에게 묻는 내용입니다. 고민한 정조나 질문에 답할 유생이나 신하들 모두 직·간접적으로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고민을 엿보는 독자는 대부분 정조나 신하들처럼 직접 국가를 운영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을터입니다. 하지만, 왕조시대와 대의민주주의시대라는 시대·정치체제 차이와 기술 발달로인한 정치 참여 방법의 변화라는 현실을 생각하면 완전히 의미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서로 자신의 언어를 남기는 일이 헛된 말에 의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 정조의 글처럼 단지 책을 읽고 고민하기만 한다면 그 또한 헛된 일로 그칠터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책에 정조가 던진 질문만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정조의 '책문' 자체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이런 질문에 어떤 답들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그런 호기심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