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대출 카드

Posted by 쪽빛아람
2015. 12. 4. 23:30 2015/Book


 이틀 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등학생 시절 도서대출 기록이 공개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고교시절 도서대출 기록 유출·보도로 논란(연합뉴스)

 기사의 주 내용은 도서대출 기록도 개인정보인데 함부로 공개되어도 괜찮으냐 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엉뚱한 생각만 들었습니다.


 도서관이라는곳에 처음 간 게 중학생 때였습니다. 어쩌다보니 책읽는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집에 읽을만한 책은 다 읽었고 새 책을 사서읽을만큼 여유로운 형편도 아니라 책을 빌릴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친구가 다닌다는 '책사랑'이라는 대여점에 가봤는데, 그 당시 중심가에 하나 있던 책사랑은 한 권 빌릴때마다 돈을 내기도 해야했지만, 처음에 회원가입할 때 보증금과 선납금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처음 가게 된 시립도서관은 제게 천국이었습니다.[각주:1]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처음 본 도서 대출 카드는 위 사진 속에 있는것처럼 생겼었습니다. 책을 빌릴 때는 앞이나 뒤에 꽂혀있는 카드를 빼서 이름과 날짜 등을 적고 카드는 제출하고 책만 가져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언제 빌려가서 언제 반납했는지가 대출 카드에 다 기록되었기에 책이 얼마나 인기있는지 혹은 누가 빌려갔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빌려가는 책은 한 장으로 부족해서 두세장을 붙여서 넣어두기도 했었습니다.


 처음 시립도서관에서 본 도서 대출 카드 생각 다음으로 일본영화 러브레터에 나왔던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러브레터를 보면 학교 도서실 관리를 하는 남학생이 아무도 빌려가지 않았던 책 다섯 권을 빌려서 대출을 하면서 도서 대출 카드에 이름을 써넣는 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그냥 장난친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본 후에는 장난이 아니었고 본인과 동명이인인 좋아하던 여학생의 이름을 써넣는 일종의 고백이라고 보였습니다. 영화 중간 즈음에 여자주인공이 모교를 찾아서 도서실에 들렀을 때 이름을 듣고 후배들이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알아볼만큼 특이한 책을 많이 빌렸던 남자주인공이었습니다.





  영화는 남자주인공이 빌려갔다가 전학을 가면서 여자주인공에게 대신 반납을 부탁했던 책을 후배들이 가져오면서 끝납니다. 도서 대출 카드에 써진 이름을 보고있는 주인공에게 후배들이 뒤쪽을 보라고 말해주고, 그렇게 뒤집어 본 대출 카드의 뒷면에는 (남자 주인공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여자 주인공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영화를 볼 때도 저 도서 대출 카드가 아직도 잘 보관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저께 기사를 보고나니 더 신기했습니다. 하루키가 1949년 생이니까 196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을테고 그러면 공히 5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시절의 기록들이 잘 남아있다는거니까요. 학창시절 제가 빌려봤던 책들의 도서 대출 카드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아직 기록이 남아 있다면 찾아보고 싶습니다.



 문득 기록을 후세로 넘겨주기 위해서 여러곳에 나눠서 실록을 보관했던 조선시대 생각도 나고, 디지털 기록과 관련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최근의 정치권 사건도 생각나면서 씁쓸했습니다. 당당한 이들이 기록을 더 잘 남기려 할껍니다.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야 모두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서 애쓰겠지요.




  1. 아직도 어떻게 시립도서관을 알고 찾아간건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알려줬겠죠? 누군지 모르지만 처음 알려준 분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본문으로]